기간: 2024. 1. 9 - 2024. 1. 20
휴관: 1.14 - 1. 15 (예약시 관람가능)
오픈: pm12 - pm7
장소: 비움갤러리(서울 중구 퇴계로32길 34 1층)
문의: 0507-1486-0222
작가 서유영 @_youyeongseo_art
작가 임수빈 @yimsoobin3056
격주간지 <빅이슈 코리아> 2024년 1월 1일호
예술평론가 배민영 기명 칼럼 “슬기로운 문화생활” 원고
비움과 채움의 미학
- 서유영 임수빈의 두 번째 2인전 <미시와 거시>
전시 기획과 미술 평론을 하며 가끔 작품을 사기도 하고, 서문 비용을 작업으로 대신 받을 때도 있다(물론 이런 경우는 극히 드물고, 누가 먼저 제안을 하든 매우 조심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서로 타이밍과 마음이 잘 맞아야 한다. 그래서 이런 경우는 서로가 이미 잘 아는 관계일 때 발생한다). 많진 않지만, 그리고 그 일부는 다시 누군가에게 선물을 하기도 하지만, 소위 ‘배민영 컬렉션’을 만들어가는 입장에서 다양함 안에서도 어떤 공통성이 있냐고 물어본다면 대답해 줄 수 있는 하나의 캐치프레이즈 같은 게 있다. “비움 속에 채움이 있거나, 채움 속에 비움이 있는 작업”이 나의 나름 철저한 준거이다. 물론 어떤 작업이든 이 말에 끼워 맞출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가령 “자연으로부터”, “조화”와 같이 너무나 호환적이어서 관대할 정도로 추상적이고 이상적인 워딩을 아무리 적용해보려 해도 개인적으로 그런 느낌이 오지 않으면 평론에 쓸 수 없듯이, 이 작업을 정말 갖고 싶다고 느낄 때 마지막으로 점검하는 기준은 결국 비움과 채움의 오묘한 조합이었음을 고백한다.
마침 임수빈과 서유영 두 사람의 2인전은 2021년 8월, 그리고 이번 1월 9일부터 20일까지의 두 번째로 이루어진 장소 모두 비움갤러리이다. 갤러리는 기본적으로 채움도 중요하기 때문에 불교신자로 알려져 있는 김상균 대표님의 갤러리명 선택 자체가 흥미롭기도 한데, 역시 ‘비움 속 채움’을 늘 잘 해내야만 하는 아이러니와 스트레스를 미루어 짐작해보며 늘 응원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기에, 이 칼럼의 제목을 홍보 목적에도 맞추는 한편 이 기회로 나의 컬렉션 준거를 밝혀보았다. 그리고 어쩌면 가장 중요한 것. 지난달에 비움갤러리가 새로운 주소(서울 중구 퇴계로32길 34 1층)로 둥지를 옮겼다. 다행히 기존 위치와 도보로도 멀지 않은 곳에 있어 혹시 모르고 갔다가도 완전히 헛걸음하고 돌아가지야 않겠지만, 이 글을 보는 사람이라면 갤러리가 위 주소로 이전했음을 꼭 기억해두길. 전시는 매일 정오부터 저녁 7시까지 볼 수 있고 일, 월은 예약관람이라고 한다. 쉽지 않은 운영 방침인데, 역시 비움 속 채움이 확실한 갤러리다.
그럼 두 작가의 세계로 더 들어가 보자. 먼저 서유영의 이번 신작인 ‘합창’ 연작은 10x10(cm)의 작은 판넬 위에 집 하나씩 그리고 여러 개의 조각을 모아 한 작품으로, 아파트를 모티브로 했다고 한다. “똑같이 생긴 집이 여러 층 모아져 하나의 건물로 만들어져 있는 아파트, 그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모두 제각각의 모습일 것이다. 이들이 모여 아파트 규칙을 정하고, 그것을 지켜가면서 공동생활을 잘 유지하는 모습을 ‘나눠 있지만 잘 섞이고 어우러져 하모니’를 만드는 것에 비유하고 싶었다.”고 작가는 말한다. 그도 그럴 것이 독채 위주의 작은 집들의 율동감 있는 배치를 그만의 색감과 마티에르로 표현해내며 큰 사랑을 받아온 작가는 “내 고향은 아파트”라고 할 정도로 아파트가 많은 동년배 80년대생 이후의 정서를 지나치지 않았을 것이고, 그렇다면 아파트가 흔히 이야기한대로 서로의 소식을 잘 모르고 각박하다는 편견에만 사로잡힌 공간이 아니라 그 안에서도 커뮤니티와 이웃의 정, 그만의 규범에 대한 느슨함과 엄격함의 고민이 있을 것임을 생각해왔을 터. 재밌는 점은 아파트 그 자체에 대한 사실적 표현(특히 사라져 가는 풍경에 대한 기록 위주)은 이미 회화, 사진, 출판, 설치 등에서 다양하게 이루어져 왔지만, 모듈 구조 안에 각자의 독채를 둔 작업은 보지 못했기 때문에, 서유영 특유의 직관적인 그림의 맛이 있면서도 메시지가 있는 이번 시리즈 역시 성공적일 것이라고 본다.
그런가 하면 추상적인 표현기법으로 ‘미로와 여백의 관계’를 풀어나간 임수빈의 ‘아코이메토스’ 연작은 역시 같은 주제 안에서 상호작용한다. 작가는 “내 작업은 빼곡한 미로의 형식으로 그 모퉁이에 작은 여백이 존재하며, 여기서 미로들은 자개 조각들로 현현되어 답답함과 화사함이 동시에 보여진다. 한 주체가 살아가는 삶이자 세계로 이야기하고자 했고 화려하지만 꽉 찬 미로를 통해 여유를 잃고 살아가는 자신 또는 우리들의 모습으로 투영하고자 했다. 미로로 표출된 세계가 결코 틀렸거나, 삶의 가치가 가벼웠던 것이 아니라는 걸 자연의 에너지를 담은 화려한 자개의 색으로 말함으로써, 미로 속의 여백을 통해 희망과 행복의 의미를 말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Acoimetus는 본디 ‘잠 없는 사람’이라는 뜻인데, 경기도 광주에 있는 작업실에 가끔 보러 가거나 통화를 하면 임작가가 너무 잠이 없는 것 같아 걱정이 될 때가 많았다. 이 지면에 다 담을 수는 없지만 한번은 필자가 기획한 <미디어는 마사지다Medium is Massage>라는 그룹전에 임작가의 작업 기록 일부를 전시했음에도 그 양이 방대해 관람객들이 놀랐을 정도로 기록광이고 삶에 대한 애착과 고민이 많다는 것만으로 성실성과 일종의 신뢰가 형성되는 인물이고, 여담이지만 동명의 여자 작가도 있어 사람들이 혼란스러워 하기도 하는데, 자신만의 세계를 탄탄하게 구축해온 남자 작가다.
“2인전이 제일 어렵다는 말이 있다.”, “전시서문은 이들이 2인전을 최초에 추동한 공통의 모티브에 대해 작품명 <미시와 거시>에 낸 창처럼 여백으로 남겨두었었다. 무책임하지 않은 선에서 두 작가는 즐거운 퀴즈를 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 두 발췌는 지난 2021년 필자가 두 작가의 첫 2인전에 “새로운 원근법”이라는 제목으로 썼던 서문에서 초반부 한 문장과 후반부 두 문장을 가져온 것이다. 2년 반 만에 다시 2인전을 여는데, 그 사이에도 작업적 소통과 응원이 있었음을 잘 알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진심 어린 축하를 보내고 싶고 이들에 대한 신뢰와 의리, 그리고 갤러리스트로서의 열정이 대단한 김상균 대표님께도 이 지면을 빌어 후배 예술인으로서 심심한 감사를 드린다. 전시와 동명인 이들의 컬래버레이션 작업 중 한 점은 필자의 컬렉션에 있고, 한 점은 프랑스계 온라인 갤러리에서도 판매가 되었다. 첫 전시의 협업 결과가 모두 주인을 찾아갔다는 것은 작가들에게 있어서도 큰 의미일 뿐만 아니라, 필자에게도 소장의 영광과 판매 소식을 들었을 때의 기쁨은 평생 간다. 왜 이들의 작업이 ‘미시와 거시micro&MICRO’인지는 이 글에 살짝 묻힌 정도의 설명들과 도판에서의 느낌이 단서가 되겠지만 더 자세한 설명은 비움갤러리에 오셔서 신작인 2023년 버전과 함께 직접 확인하시라고 생략해두기로 한다. 아무쪼록 2024년 새해에도 비움과 채움, 미시와 거시를 넘나드는 행복이 가득하시길, 이 글을 읽는 독자와 예술을 향유하는 모든 이들에게 기원한다.
글/배민영(예술평론가)